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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순수했던 시절
    책/소설 2020. 10. 28. 05:29

    미국, 1951

     

    사람은 세상을 감성과 이성으로 받아들인다. 근대의 교육제도는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세상과 격리시키고 이성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감성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감성의 성장은 멈추고 이성만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그렇게 학교는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이성을 가진 10대를 탄생시켰다. 감성과 이성의 불일치로 인해 어른도 아이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 10대는 세상에 대한 기대와 불안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인 콜필드는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이성을 가진 10대이다. 콜필드는 세상에 대한 감성을 책으로 충족시키며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교육은 이러한 그의 세상에 대한 감성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감성을 배제한 채 이성으로만 이해시키려는 교육제도는 그에게 어른의 세상을 가식적으로 보이게 한다. 콜필드는 책에서의 감성과 교육제도에서의 이성 사이에서 세상에 대한 기대와 냉소를 가지고, 감성이 없는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며 퇴학을 당한다.

    퇴학을 당한 콜필드는 직접 세상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는 책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간접경험으로만 형성된 그의 세상에 대한 감성은 아이의 것이다. 아이의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콜필드는 책이 아닌 실제 세상의 감성을, 진짜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경험한 진짜 세상은 가식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그가 가진 아이의 감성은 순수성이고, 갑작스레 세상에 뛰어들면서 그는 자신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아이의 감성에서 더 성장하지 못한 콜필드는 세상에 지레 겁을 먹고 아이로의 회귀를 바라며, 자신의 여동생 피비와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피비와 친구들은 그에게 아이의 감성이 살아있는 세상에 있는 동료들이다. 그들과 함께 그는 자신의 순수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며 호밀밭의 파수꾼을 꿈꾼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이처럼 10대의 성장통은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1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이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세상에 뛰어들며 아이의 감성을 외면하고 어른의 이성으로 세상에 적응하려 할 뿐이다. 아이의 감성을 외면하지 못하고 계속 거기에 머무른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2이나 피터팬 콤플렉스 등의 말은 이러한 아이의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무르려고만 하는 것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표현한 말들이다.

    하지만 세상에 뒤섞여 아이의 감성을 잃어가는 것을 당연한 성장통이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어느 순간 너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놀랄 때도 있다. 그래서 진짜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라는 말은, 단지 그 시절의 친구가 좋다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등학교 시절, 10대의 끝 무렵은 어른의 이성이 아이의 감성을 막 압도하기 시작하려는 시절이면서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은 마지막 시절이다. 고등학교 친구가 진짜 친구인 것은 그 시절의 나 자신이 가장 나다웠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내가 알고 있는 건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이를테면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모리스 자식도 그립다정말 웃긴 일이다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말을 하게 되면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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