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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 휴머니즘 비판
    책/소설 2020. 10. 28. 05:24

    영국, 1988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사람들은 정말 그래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히틀러를 사랑할 수 있을까? 히틀러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히틀러는 절대 악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휴머니즘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다큐멘터리는 히틀러의 가족을 분석하여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음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히틀러는 정말 사람이 아닐까? 그는 정말로 절대 악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휴머니즘의 가치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도리스 레싱은 다섯째 아이에서 휴머니즘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화목한 한 가정을 파괴하는 다섯째 아이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그는 정상적이다. 그는 단지 아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가 주는 기괴함에 가까운 공포가 가정을 파괴한다. 다섯째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느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공포에서, 그가 어쩌면 현대 인류와는 다른, 진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틀어진 또 다른 인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다섯째 아이는 절대 악인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다섯째 아이가 가정을 파괴하는 과정을 그가 왜 그러한지에 대한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아무런 변명거리도 없는 말 그대로의 절대 악을 제시하면서 과연 이 아이마저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무조건적인 사랑, 휴머니즘에 대한 맹신에 질문을 던질 뿐이고, 특별한 답을 하지는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소설들이 인간에 대한 긍정, 때론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는 가운데,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휴머니즘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다소 독특한 소설이다. 다섯째 아이가 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원초적 공포는 정말로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우리는 정말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야 하는가? 휴머니즘에 대한 맹신은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이고, 가식이고, 때론 사랑을 명분으로 하는 또 다른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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