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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 근본, 국가 혹은 삶의 문제
    책/소설 2020. 10. 28. 05:17

    파키스탄, 2007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정치적 메타포로 가득한 소설이다. 소설 내 두 핵심 남녀 인물인 찬게즈와 에리카는 각각 동양의 칭기즈칸’, 서양의 아메리카를 나타낸다. 작가는 찬게즈와 에리카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의 관계를, 그 대립을 말하고 있다.

     

    찬게즈는 고향인 파키스탄을 그리워하며 미국 생활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마치 그의 조국인 파키스탄이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하기 전 야만인처럼 생활할 때, 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화려한 문명을 이룩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고향인 파키스탄을, 그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런 찬게즈를 보며 그의 직장 상사인 짐은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한다. 짐에게서 근본적인 것은 현실의 미국이다. 그러나 찬게즈에게 근본적인 것은 자신의 과거인 파키스탄이다. 찬게즈는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에서 주저하다가 에리카를 만난다.

     

    에리카는 죽은 크리스를 잊지 못하고 크리스에 대한 그리움, 혹은 그를 사랑하기 전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찬게즈를 사랑하지 못한다. 마치 그녀의 조국인 미국이 911테러의 위기(crisis) 이전의 위대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그리워한 것처럼 크리스(crisis), 혹은 그 이전의 자기 자신, 그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런 에리카에게 찬게즈가 다가오고, 그녀의 어머니는 찬게즈에게 에리카의 남자친구가 아닌, 친구가 되어 그녀를 위로해달라고 한다.

     

    찬게즈는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에리카는 찬게즈와 크리스, 혹은 크리스를 만나기 전의 자신 사이에 있다. 이들은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 돌아보고 싶은 과거 사이에서 주저하고, 현실과 과거 중 어디에 근본을 놓아야 할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마치 미국이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파키스탄에 압력을 넣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것처럼 에리카가 찬게즈를 떠나며 끝난다. 찬게즈는 연락이 끊긴 에리카가 자살했다고 생각하며, 그의 조국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키스탄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 소설은 미국의 정보요원으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찬게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 현실의 미국, 현실의 에리카를 떠나 과거의 파키스탄으로 돌아온 찬게즈의 이야기를 다 들은 미국의 정보요원은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번쩍이는 무엇인가를 꺼낸다. 찬게즈는 그것이 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명함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현실에서 과거로 돌아온 찬게즈는 그의 근본인 과거에서, 파키스탄에서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길 바란다.

     

    이처럼 이 책은 정치적 메타포로 가득하다. 그러나 메타포는 메타포일 뿐이다. 사회는 인간의 집합 그 이상이라지만 궁극적으로 사회는 인간의 집합이다. 사회적 메타포는 곧 인간적 메타포다.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인간의 이야기를 빌린 사회의 이야기이자 사회의 이야기를 빌린 인간의 이야기이고, 파키스탄과 미국의 이야기이자 찬게즈와 에리카의 이야기이다. 어떤 메타포를 선택할지는 독자의 몫이지만, 근본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주제는 변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주제이자 인간의 집합인 사회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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