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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 기억과 환상의 경계에 선 권력
    책/소설 2020. 10. 28. 05:14

    한국, 2013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10여 년 전 헐리웃에서 유행했던 반전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메멘토, 식스센스, 디아더스, 아이덴티티 등. 그래서 비록 반전의 강렬함은 있더라도 새로운 느낌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헐리웃 반전 스릴러 영화를 닮은 것처럼 한국 영화를, 특히 봉준호의 영화를 닮았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각 국가별 특색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헐리웃 영화는 유독 자유나 가족을 강조하고, 과거 전성기의 홍콩 영화는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를 많이 담아내는 편이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영화가 봉준호의 영화로, 살인의 추억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메시지를 은근슬쩍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런 면에서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많이 닮아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70살이나 된 살인자의 기억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이 주된 내용이지만 살인자가 살인을 하게 된 동기에서 사회적 메시지가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처럼 은근슬쩍 나타난다. 당시에는 살인을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시절이었고, 특히 실체가 불분명한 간첩이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간첩으로 상징되는 그 시절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다. 군사독재정권 때 살인을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혹은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살인을 가장 많이 자행한 주체가 바로 군사독재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은근히 나타나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는 비록 소설 내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기억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절정 부분에서 현 정권에 대한 미묘한 비판의 느낌으로 확대된다. 현 정권에서 군사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것은 마치 살인자가 자신의 기억을 환상으로 미화하는 것과 같다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역사적 사건을 기억에 의존한 학문이 아닌, 권력에 의존한 정치로 해석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무서운 건 악이 아니고 시간이라고 한다.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으니깐. 하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은 정반대다. 무서운 건 시간이 아니라 악이다. 악은 시간조차도 이기려 한다. 과거의 기억을 왜곡하여 환상을 만들어내고 이것으로 현재의 권력기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무도 시간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작가의 일침일지도 모른다. 악이 시간을 이길 수 없다면,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행한 악이 만들어낸 환상은 언젠가는 시간에 의해 기억으로 되살아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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