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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슬프도록 아름답게 허무한 삶
    책/소설 2020. 10. 28. 05:13

    일본, 1948

      

    흰색과 겨울로 유명한 설국에는 4가지 색과 3가지 계절이 등장한다. 허무의 검은색허무를 받아들인 순수의 흰색허무를 거부한 공허의 붉은색그리고 공허와 순수 사이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녹색그리고 이러한 색들은 눈으로 가득한 흰색의 겨울아침 햇살이 비치는 붉은색의 가을신록이 움트는 녹색의 봄으로 나타난다.

     

    삶은 허무하다. 이별하고 실패하고 죽는다. 삶은 이러한 허무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삶의 허무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그러므로 허무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허는 이러한 허무를, 비어짐을 거부함으로써 비어짐으로 텅 빈 것이다. 순수는 이러한 비어짐을, 허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어짐으로 가득 찬 것이다. 공허와 순수는 둘 다 비어 있지만 공허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거부하기에 아름답고, 순수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슬프다. 사람들은 죽음을 거부하기에 공허하고, 결국엔 죽기에 순수하다. 그래서 삶은 공허하면서 순수하고, 슬프도록 아름답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는 이러한 삶의 슬프도록 아름다움에 있는 시마무라, 요코, 다마코가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시마무라는 국경의 긴 터널, 그 검은 터널처럼 허무하다. 그는 모든 것은 헛수고라며 별다른 직업 없이 서양 무용에 대한 글을 쓴다. 그러나 그는 서양 무용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는 본 적이 없는 서양 무용, 환영에 불과한 서양 무용을 쓰면서 허무에 머물고 있다. 이런 시마무라는 기차를 타고 검은 터널을 지나 흰 눈의 고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마코가 기다리고 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녹색의 계절인 봄에 처음 만났다. 게이샤인 고마코는 어린 시절 도쿄로 팔려가면서 소꿉친구인 선생의 아들과 이별하였다. 그렇게 고마코는 허무를 경험했다. 이후 다시 돌아온 고마코는 선생이 자신의 아들과 약혼하길 원하지만 이를 거부한다. 이미 5년째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무를 받아들인 고마코의 피부는 순백이다. 그리고 선생의 아들은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고마코는 도쿄로 떠날 때 자신을 마지막까지 배웅해준 선생의 아들이 죽어감을 보며 허무를 거부하는 공허에 끌리고, 뺨은 붉게 물든다. 고마코는 이러한 공허에서 허무 속에 살고 있는 시마무라를 만났다. 시마무라는 그녀의 닫혀진 짙은 속눈썹이 까만 눈을 반쯤 뜨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시마무라가 두 번째로 고마코를 만난 건 흰색의 계절인 겨울이다. 고마코는 죽어가는 선생의 아들과 함께 흰 누에고치를 만드는 방에 살고 있다. 그렇게 고마코는 선생의 아들의 죽음을, 그 허무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선생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고마코는 허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어짐으로 가득 차는 순수를 끝내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선생의 아들이 죽어갈 때 마치 어린 시절 그가 고마코를 배웅했던 것처럼 허무 속에 있는 시마무라를 배웅하러 나갔다. 그렇게 선생의 아들은 고마코의 부재 속에 죽어갔고, 그렇게 죽어간 그의 곁에는 요코가 있었다.

     

    시마무라는 요코를 두 번째로 고마코를 만난 겨울에 만났다. 요코는 검은 터널을 지나 흰 눈의 고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죽어가는 선생의 아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요코는 선생의 아들의 죽음을, 그 허무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수한 눈의 고장에 있었지만, 과거 녹색의 십자가를 한 간호사였고, 삶과 죽음, 공허와 순수를 오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요코는 허무를 거부하는 찌를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고, 죽어가는 선생의 아들 곁을 끝까지 지키며 허무를 거부하려 하였다. 그러나 결국 선생의 아들은 죽었다. 요코는 그 허무를 받아들여야 했고 그렇게 순수해야 했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공허해져간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요코를 붉은색의 계절인 가을에 마지막으로 만난다. 시마무라는 엷은 녹색의 날개를 가진 나방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렇게 가을에 누에고치 창고에서 요코가 죽는다. 눈의 고장에서 사람들은 흰 눈에 갇힌 겨울에 속이 텅 빈 흰 누에고치로 지지미를 만든다. 아침햇살에 다홍빛으로 빛나는 지지미를 만들어 시마무라처럼 허무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름 잠옷으로 판다. 그러나 지지미가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을 특별히 윤택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속이 텅 빈 흰 누에고치로 지지미를 만든다.

     

    요코는 흰 누에고치를 만드는 이들처럼 순수해져야 하지만 다홍빛으로 빛나는 지지미처럼 공허하다. 공허한 요코는 흰 누에고치로 가득한 창고가 붉은 불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낼 때, 붉은 불꽃에 타다 남은 검은 재로 떨어지며 허무 속에 죽는다. 고마코는 선생의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순수를 견뎌내지 못했고, 허무로, 시마무라로 도피하였다. 그래서 붉은 옷을 입은 고마코는 공허하다. 그리고 고마코가 견뎌내야 하는 순수를 요코가 대신 견디려 했지만 요코 또한 공허의 붉은 불길에 휩싸여 허무의 검은 재로 추락하였다. 그렇게 죽은 요코의 창백한 얼굴에 붉은 불빛이 지나가며, 순수와 공허가 교차하였고, 요코는 찌르듯 아름다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마코는 자신의 순수를 대신 감당하려다 자신처럼 공허함에 빠진 요코의 허무를 보며 희생인지 형벌인지 모를, 미칠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

     

    요코와 고마코는 허무를 받아들이며 순수해져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들은 결국 공허를 선택했고 허무로 텅 비어졌다. 그리고 이런 요코와 고마코 곁에서 시마무라는 검은 밤하늘에 하얗게 빛나는 은하수를 본다. 그는 허무의 검은 터널을 지나 순수의 흰 고장으로 왔지만 여기엔 검은 재로 추락한 요코와 이에 미칠 것 같은 슬픔을 느낀 고마코만 있을 뿐이다. 하얗게 빛나는 은하수는 아름답지만 삶은 그토록 슬프고, 흘러내릴 듯한 눈물을 참아내는 시마무라에게 허무의 검은 밤하늘에서 하얗게 빛나는 순수의 은하수만이 무심하게 흘러들어온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것을 호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호상이라고 하여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삶에는 이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허무가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허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허무를 거부하여 아름다운 공허가 있고, 받아들이기에 슬픈 순수가 있다. 결국 비어짐을 거부함으로써 비어짐으로 텅 빈 공허와 비어짐을 받아들임으로써 비어짐으로 가득 찬 순수 모두 비어져있는 허무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허무를 견뎌내는 것이란 허무를 거부하기도, 허무를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그저 허무를 견뎌내는 것이다. 이렇게 공허와 순수로 허무를 견뎌내는 삶이란 슬프도록 아름답게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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