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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 삭막한 순수함책/소설 2020. 10. 28. 05:18
김훈의 소설은 삭막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말만 한다는 느낌이다. 문체에서 굳이 멋을 부리려 하지 않는다. 김훈은 한 TV프로그램에서 ‘주어와 서술어로만 된 글을 쓰고 싶다’고 하였다. 따라서 김훈의 삭막함은 순수함에 가깝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단지, 그 보여주려는 대상이 삭막하기 때문에 소설이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김훈이 보여주려는 것은 삭막한 세상이고, 그 세상에서 소외된 자신이다. 그리고 김훈은 이러한 자신을 혐오한다. ‘공무도하’의 작가의 말에서 김훈은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중략)...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중략)...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라고 썼다.
김훈의 세상에 대한 불신과 자기혐오는 과거 기자로 일할 때 느꼈던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훈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자로 일한 80년대를 ‘지긋지긋했다’라고 표현하였다. 지긋지긋한 시대에서 단지 관찰자로밖에 있을 수 없었던 죄책감이 이러한 자기혐오를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김훈, 그리고 이를 대변하는 김훈의 삭막한 소설. 그러나 ‘내 젊은 날의 숲’은 조금 다르다. 문체나 이야기 구도 등에서 큰 변화는 없지만 주인공이 죽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장면은 김훈답지 않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며, 소설은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의 말인데,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중략)...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라고 쓰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은 김훈이 그동안 가졌던 자기혐오에서 조심스레 벗어나려하는 소설이다. 어느덧 60대 중반이 된 노년의 소설가가 이제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그 순수함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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