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얀 성》 오르한 파묵 - 지극히 터키적이고 놀랍도록 세계적인
    책/소설 2020. 10. 28. 05:44

    터키, 1985

     

     

    1. 현대성

     

    근대와 현대의 구분점은 학문적으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세계는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양차 대전을 거치며 급격히 발전한 과학기술로 가전제품이 대량생산되면서 생활양식이 크게 바뀌었다. 대중문화와 3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근대성이 현대성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의 새롭게 등장한 부엌, 여성의 가사노동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며 새로운 시대상을 열었다.

     

    근대성 혹은 모더니티란 산업혁명 이후 도래한 소품종 대량생산에 따른 가치관이다. 근대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다. 일명 테일러리즘으로 불리는 과학적 관리법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것을 수량화, 객관화한 것이다. 포드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 포드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테일러리즘을 적극 도입한 '포드'의 성공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가 일반적인 생산양식으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생산방식이 초래한 관리된 사회는 사람을 국가, 사회,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시키면서 인간을 파괴하였다. 모더니즘 문학은 이러한 근대성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성이 추구한 관리에 따른 효율은 인류 문명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시켰기에,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근대성을 비판한 모더니즘 문학들

     

    이러한 근대성은 양차 대전 이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전쟁으로 급격히 발전한 과학기술은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를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바꾸었다. 노동자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과학적 관리법에 따른 컨베이어 벨트 생산방식이 셀 생산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테일러리즘이 여러 명의 노동자가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면 셀 생산방식은 한 명의 장인이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을 인간 본연의 가치를 가진 존재로 돌려놓기 시작하였다.

     

     

    소수의 사람이 전체 공정을 관리한 셀 방식은 사람을 노동에서 소외시키지 않는다.

     

    셀 생산방식뿐만 아니라 3차 산업의 등장은 현대성으로의 전환을 보다 가속화하였다. 앨빈 토플러가 3의 물결에서 언급한 3차 산업은 테일러리즘이 추구한 관리된 효율의 가치를 다양성으로 대체하였다.

     

    3차 산업,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앨빈 토플러의  『 제 3의  물결 』

     

    이러한 경제 생산방식의 거대한 전환은 사람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하였다. 효율을 위한 관리, 관리를 위한 규칙, 규율, 형식 등의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요컨대 현대성은 근대성의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2. 해체의 철학

     

    데리다의 해체 개념은 현대성을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데리다는 특정한 개념은 단어인 기표와 뜻인 기의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기의는 또 다른 기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기표들은 다시 기의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기표를 정의하는 기의는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기표의 정의는 지연되는데, 데리다는 이를 ​차연(differance)이라 표현하였다.

     

    차연(differance)으로 '해체'를 설명한 데리다.

     

    예를 들어 나무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여러해살이 식물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나무가 기표고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여러해살이 식물’이 기의다. 그런데 나무의 기의는 줄기’, ‘가지’, ‘목질’, ‘여러해살이 식물’인 여러 기표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나무라는 개념을 설명하려면 기의를 구성하는 기표들인 줄기’, 가지, 목질’, 여러해살이 식물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줄기라는 기표는 다시 고등 식물에 있어서 기본 기관의 하나. 식물체를 받치고 뿌리로부터 흡수한 수분이나 양분을 체관부, 물관부를 통하여 각 부에 나르는 역할을 한다. 표피계, 기본 조직계, 관다발계로 되어 있다’라는 기의로 구성되어 있고, 이 기의는 또다시 수많은 기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나무라는 기표의 개념을 기의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무를 보여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나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나무를 통해 추구하는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무는 환경운동가에게는 생명이고, 공장장에게는 목재이며, 소방관에게는 잠재적 화재요인이다.

     

    근대성이란 합리주의고, 합리주의란 개념을 기표와 기의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데리다는 해체로 여기서 벗어나야 함을 말한 것이다. 해체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 하나의 정의와 이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절대적 진리에서 벗어나 그 개념이 향하는 지향점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향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라는 근대성의 핵심에서 벗어난 현대성은 다양성과 상대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것이 무제한적인 다양성, 상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 개념이 향하는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체에 따른 현대성은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관점이다. 쉽게 말해 현대성이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관점하에 근대성의 에서 벗어나 지향점을 추구하는 것이다.

     

     

    3. 해체의 시대

     

    정치에서 근대성의 틀은 ​이념​이었다. 이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해체되었고, 이념의 틀에서 벗어난 정치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권력이다.

     

    중요한 것은 우파가 유럽을 접수한 것이 아니라 좌, 우파의 이념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력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따라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해야 얻을 수 있고, 대중의 요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사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흑묘맥묘라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양자택일을 거부하였고, 유럽에서는 중도실용노선을 채택한 우파정권이 떠오르기 시작하였으며, 노무현 전 정권에 대해 박근혜는 현 정권이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을 하고 있다라고 하였고, (물론 이는 박근혜가 노무현을 비판하기 위한 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노무현 정권이 현대의 흐름을 정확히 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실시된 미국의 1992년 대선에서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클린턴이 부시를 꺾고 승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현대 정치의 흐름은 이념의 틀을 해체하여 권력을 지향하는 것이다.

     

    클린턴은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반영한 슬로건으로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부시를 꺾을 수 있었다.

       

    경제에서 근대성의 틀은 ​생산과 소비​였다. 이는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해체되고 있으며, 생산과 소비의 틀에서 벗어난 경제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를 추월한 구글의 크롬.

     

    정보화 사회가 속도를 강조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틀에 갇힌 생산방식은 급변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의 틀이 무너진, 소비하면서 생산하는 프로슈밍이 현대 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예견한 프로슈밍은 구글의 성장으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기존의 IT시장에서 공룡으로 군림하던 MS의 생산방식은 MS가 만들고 시장에서 소비하는, 생산과 소비가 명확히 구분된 근대적 생산방식이었다. 구글은 개방성을 모토로 소스를 소비자에게 오픈하였고, 구글의 브라우저인 크롬은 프로슈머들이 생산한 확장프로그램을 무기로 폐쇄적인 MS의 익스플로러를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다가 이내 추월하였다. 스마트폰 시장의 앱은 프로슈밍의 정수다. 애플의 아이폰이 열어젖힌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단기간에 애플의 IOS를 따라잡은 결정적 요인은 안드로이드를 IOS보다 개방적인 환경으로 만들어 프로슈머들이 앱을 활발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휴대폰 시장에서 독주하던 노키아가 무너진 이유 또한 프로슈밍 시장인 앱 스토어를 완전히 놓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 경제의 흐름은 생산, 소비의 틀을 해체하여 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구글은 개방성에 기반한 프로슈밍을 힘으로 폐쇄적이라 지적받는 애플을 넘어서고 있다.

     

    사회에서 근대성의 틀은 ​질서​였다. 이는 68혁명 이후로 해체되고 있으며, 질서의 틀에서 벗어난 사회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사람이다.

     

    아마 68혁명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일 것이다.

      

    1968, 근대적 질서의 핵심인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은 세계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성애, 환경, 여성 등 기존의 근대적 질서인 권위주의가 억압한 사람을 다양성, 상대성의 이름으로 되살려야 함을 주장한 68혁명은 비록 프랑스에서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그 가치관만큼은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성애 운동은 이러한 사회의 현대성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현재 동성애는 유럽의 적지 않은 국가에서 합법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이 여전히 강한 미국에서조차 최근 동성애 금지가 위헌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흐름은 질서의 틀을 해체하여 사람을 지향하는 것이다.

     

    동성애 금지 위헌 판결에 환호하는 시위대. Love is Love는 사람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의 지향점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문화에서 근대성의 틀은 ​형식​이었다.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해체되고 있으며, 형식의 틀에서 벗어난 문화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즐거움이다

     

    앤디 워홀의 팝 아트와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보르헤스의 포스트 모더니즘.

     

    2000년대 이후 빌보드 차트의 두드러진 경향은 이러한 형식의 해체이다90년대만 해도 힙합은 흑인, 락은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랩과 헤비메틀이 결합된 하드코어가 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하였고, 2000년대 초반 백인 래퍼인 에미넴이 크게 성공하였으며, 최근엔 장르의 구분이 모호한 음악들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등장하고 있다.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 앤디 워홀의 팝아트로 대표되는 주요 흐름은 예술의 권위를 위한 형식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문학계에서는 중남미의 보르헤스와 마르케스가 각각 서유럽의 문학 형식에서 벗어난 포스트 모더니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문화는 수많은 각각의 영역들이 그 나름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형되고 있으며, 문화가 추구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각 분야별로 천차만별이기에, 모든 문화 영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주류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현대 문화의 흐름은 형식의 틀을 해체하여 즐거움을 지향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블랙아이드피스'와 '린킨 파크'. 둘은 인종의 구성이 다양하고, 힙합과 락을 다양하게 변형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에서 근대성의 틀은 ​기점(시작점, 기원)이었다. 이는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초끈이론 등의 새로운 이론들로 해체되고 있으며, 과학이 추구하는 본연의 지향점인 법칙은 기점의 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과학뿐만 아니라 20세기의 큰 전환점을 상징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현대 이전의 과학에서 법칙은 고정적, 절대적인 기원, 시작점에서 시작되었다. 미시적 관점에서 플라톤의 4원소설을 시작으로 세계의 기초 구성물질인 원소는 고정적이고 확실한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고, 거시적 관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로 상징되는 시간과 공간은 세계가 시작되는 절대적 기점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나오면서 전자를 점이 아닌 점자구름의 형태로 보기 시작하였고, 상대성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에서 벗어났다. 이후 거시적 관점의 상대성이론과 미시적 관점의 양자역학이 충돌하는 지점을 메꾸기 위한 통합이론으로 초끈이론이 등장하였는데, 초끈이론의 초끈이란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기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의 형태로, 과학자들은 세상이 이런 초끈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물론 과학은 증명과 실험으로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이기에 이러한 이론들은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이 더 이상 법칙의 시작점에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를 놓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현대 과학의 흐름은 법칙을 지향하는 데에서 기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

     

    '전자구름'이 참인지 거짓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과학자들이 '점'으로 세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4. 현대의 자아

     

    해체의 시대, 현대성이란 이처럼 절대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현대 이전의 세계관은 절대성의 틀을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단테의 신곡』에서 나타나듯이 중세에서 절대성은 신이었다. 중세의 절대성은 근대에 접어들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오는 초인으로 상징화되는 인간으로 변화하였다. 중세의 신에서 근대의 인간으로 절대성의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물론 이는 서구에 한정된 세계관이긴 하지만 절대성에 입각한 세계관은 이슬람, 동양에서도 신의 대리자인 술탄, 천자 등의 말로 나타난다.

     

    중세의  『 신곡 』에서 '신'은 근대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초인'으로 대체된다.

     

     

    현대의 세계관은 이처럼 인간으로 이동한 절대성에서 절대성의 자리에 인간 이외의 것을 놓는 것이 아니라 절대성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는 데 공헌한 사람은 프로이트다. 근대의 세계관에서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고, 인간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었으며, 자아의 중심에는 이성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자아의 중심에 있는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인간은 자아를 이성으로 완벽히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 이외에 존재하는 무의식은 자아를 움직이는 또 다른 강력한 힘이고, 인간의 내면에는 통제할 수 없는 자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절대적인 인간의 뿌리로서의 이성을 뒤흔들었다.

     

    20세기 '자아'뿐만 아니라 세계관 자체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 프로이트의  『 꿈의 해석 』

      

    프로이트는 자아의 내면으로 들어가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자아의 틀을 해체하였고, 자아는 자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아의 지향점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르한 파묵은 하얀 성에서 자아의 외부로 나아가 자아의 틀인 정체성을 해체하고 그 지향점으로 을 제시하고 있다.

     

     

    5.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에는 해체와 지향점이라는 현대성의 중요한 특징이 자아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에게 고정불변의 진리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처럼 자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틀이다. 오르한 파묵은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스만 투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하얀 성에는 정체성의 틀에 갇힌 이탈리아인과 터키인이 등장한다. 전쟁포로가 되어 터키에 끌려온 이탈리아인은 본연의 정체성인 이탈리아로 돌아가려 한다. 이탈리아인을 관리하는 터키인은 본연의 정체성인 터키와 동경하는 정체성인 이탈리아 사이에서 갈등한다. 여기서 터키의 술탄은 중요한 것은 가 아니라 이라 말한다. 결국 터키인은 이탈리아로 가고, 이탈리아인은 터키에 남게 되는데, 이탈리아인과 터키인 모두는 자신의 에 만족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터키에 남게 된 이탈리아인의 터키 집에 유럽을 상징하는 의자가 평화롭게 놓여있는 것인데, 이는 정체성의 틀에서 벗어나 이라는 자아의 지향점을 추구하는 것을 상징한다.

     

    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에 위치한 '성 소피아 성당'. 기독교적이면서도 이슬람적이다.

     

    이러한 오르한 파묵의 다른 대표작인 내 이름은 빨강 새로운 인생은 정체성의 문제를 각각 터키라는 국가와 터키인이라는 개인으로 담아냈다. 이처럼 오르한 파묵이 정체성을 깊이 탐구한 이유는 그의 조국인 터키의 특수성과 연관이 있다.

     

    터키의 정체성 문제를 '터키'의 관점에서 쓴  『 내 이름은 빨강 』 과 '터키인'의 관점에서 쓴 『 새로운 인생 』.

     

    현대 이전의 세계는 크게 이슬람, 기독교, 동양으로 삼분되었고, 이슬람의 대표는 오스만 투르크, 현재의 터키였다. 그러나 유럽이 근대화되면서 유럽을 위협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오스만 투르크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갇힌 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이에 20세기 초반, 터키의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이슬람을 서구식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 아랍 문자를 알파벳으로 바꾸고, 술탄제를 폐지하였으며, 정교 분리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으로 한때 이슬람의 대표국이었던 터키는 유럽으로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그리고 터키는 이러한 케말 아타튀르크의 개혁으로 크게 성장하였고, 케말 아타튀르크는 현재 터키에서 국부를 뜻하는 파샤 케말 파샤로 불린다.

     

    터키 화폐의 '케말 파샤'. 현대 터키를 사실상 건국한 사람으로 국부로 칭송된다

     

    문제는 터키가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이슬람이라는 것이다. 이슬람과 유럽이 공존하는 터키는 이슬람이면서 유럽이고, 이슬람이 아니면서 유럽도 아니다. 그래서 현재 터키는 유럽 연합도, 아랍 연맹도 아니다. 이슬람이냐, 유럽이냐는 정체성의 문제는 최근 촉발된 터키 시위의 배경이기도 하다. 서구화된 터키는 이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지속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 또한 꾸준히 성장하였다. 터키의 경제성장을 이끈 에르도안 총리는 주류판매금지, 공공장소 도덕법, 인터넷 검열 강화 등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정책을 실행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터키 시위에는 이처럼 유럽과 이슬람, 케말 파샤와 오스만 투르크 사이에서 갈등하는 터키의 정체성 문제가 담겨있다.

     

     

    터키 시위와 '키스 시위'.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지하철 방송에 반발하여 '키스 시위'를 하였다.

     

    오르한 파묵은 이러한 터키의 특수성에 기반한 정체성의 문제를 깊이 고민한 작가이다. 그러나하얀 성』의 결론에는 터키의 특수성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적 흐름이 담겨있다. 근대적 틀을 해체하고 본연의 지향점을 추구하는 현대성(이념의 틀을 해체하여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 생산과 소비의 틀을 해체하여 부를 지향하는 경제, 질서의 틀을 해체하여 사람을 지향하는 사회, 형식의 틀을 해체하여 즐거움을 지향하는 문화, 기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법칙을 지향하는 과학) 자아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꿈의 해석을 통해 자아의 내면으로 들어가 이성의 틀을 해체한 프로이트가 제시하지 못한 자아의 지향점을, 하얀 성을 통해 자아의 외부로 나아가 자아의 틀인 정체성을 해체하고 그 지향점으로 을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지극히 터키적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세계적이다.

     

    오르한 파묵, 터키적이면서 세계적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