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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 청춘의 투명한 고통책/소설 2020. 11. 6. 06:26
가장자리에 피가 묻어 있는 유리 조각은 새벽 공기에 물들어 투명에 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혹자는 청춘의 고통을 통과의례적인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당연한 고통은 없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고통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청춘의 고통은 투명에 가깝다.
무라카미 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 이유 없는 고통, 청춘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이유 없이 섹스, 마약에 중독되어 방황한다. 고통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다. 완전한 고통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에 원인은 없을지라도 그 배경은 있다.
소설의 배경은 1960년 일본의 요코다 미군기지로, 이는 종전 후 미국에 점령당한 일본 사회를 상징한다.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였고,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였다. 침략한 일본과 점령한 미국은 소설 내에서 ‘검은 새’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검은 새는 개인에 의한 자연스러운 문화를 국가에 의한 인공적 문화로 바꾸어놓았다. 마약과 섹스는 이러한 인공적 문화가 만들어낸 기형적 부산물이다.
청춘은 단지 나이가 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춘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과오를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세대를 의미한다. 일본의 기성세대는 미국을 침략하였고, 일본의 청춘은 미국에 점령당했다. 일본의 청춘은 침략하지 않았지만 점령당했고, 그렇게 자신들의 과오가 아닌 것을 자신들이 받아들여야 했다. 선택하지 않은 고통이기에, 원인도 해결책도 모른 채 그저 방황하기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유 없는 고통, 블루는 그래서 가장자리에 피가 묻어 있는 유리 조각처럼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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