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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 지배와 복종의 쾌감, 그리고 타락
    책/소설 2020. 10. 28. 04:53

    영국, 1899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성적으로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과 복종하는 것에 대한 쾌감을 나타낸다.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사디즘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비단 성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배와 복종은 이를 통제하는 감정이 선을 넘었을 경우, 그 목적이 사라지며 주체를 집어삼켜버린다. 지배하는 사람은 왜 지배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배에 복종하게 되고, 복종하는 사람은 왜 복종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복종에 지배되는 것이다. 지배와 복종은 인간의 공격성이 가지는 괴상한 쾌감이다.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을 뒷받침하는 이념은 선교였다. 선교는 종교로 야만인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리는 약탈이었다. 약탈은 야만인을 지배하여 탐욕을 채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은 종교로 야만인을 지배하여 탐욕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탐욕은 감정이기에 지배의 목적을 집어삼킨다. 지배를 위한 지배, 통제력을 상실한 지배가 된다. 서구제국주의는 탐욕이라는 감정에 집어삼켜져 주체를 상실한 채 스스로의 지배욕에 복종한 것이다.

     

    서구제국주의 시절이 끝났다고 하지만 서구의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현재 아프리카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내전과 가난이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내전들은 서구제국주의가 그들의 뿌리 깊은 곳에 내린 탐욕의 결과들이다. 탐욕은 아프리카를 내전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고,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없앤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를 가난에서부터 벗어나도록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아프리카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의 자립심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복종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가난과 내전은 서구제국주의의 탐욕이 그들에게 심어놓은, 주체를 상실한 지배된 복종의 결과이다.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서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 말로 외에 두 개의 인간군상이 나온다. 지배에 복종한 백인 커츠와 복종에 지배된 아프리카인들. 항해사 말로는 아프리카 밀림으로 떠나려한다. 당시 서구제국주의는 지배를 위한 지배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상아거래로 상징되는 탐욕이었다. 이를 절제할 수 있는 것은 냉정한 이념이었다.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못 되지. 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그들은 단순히 획득이라는 목적을 위해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움켜잡았을 뿐이야. 그것은 폭력을 쓰는 강도 행위요, 대규모로 자행되는 흉측한 살인 행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 행위에 덤벼들었던 거야.

     

    그것은 상아를 구할 수 있는 거래소 근무 명령을 받고 사업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정해진 비율로 벌어들였으면 하는 욕구뿐이었다네.

     

    이 불미로운 행위를 대속해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요.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냉정을 잃지 않도록 하세요, 냉정을. 아듀.

     

    그러나 탐욕을 절제해야 하는 이념의 실체는 지배였다. 무지한 원주민들을 그들의 풍습에서 떨어트리는 것, 그들을 서구제국주의의 이념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윤을 남기는 것, 탐욕의 수단일 뿐이다. 말로는 주체를 말살하는 서구제국주의의 탐욕이 지배하는 아프리카의 밀림, ‘암흑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수백만에 달하는 무지한 원주민들을 그네들의 그 무시무시한 풍습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고 떠들었는데, 결국은 그런 말을 듣다가보니 정말이지 내 마음이 그만 불편해지고 말더군. 그래서 나는 회사라는 곳은 무엇보다 이윤을 위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암시를 해보이기도 했지. <찰리, 너는 잊고 있구나.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하는 구절 말이다> 숙모는 명랑하게 말했어. 여자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진실과 거리가 먼 소리만 할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그들은 자기네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는 셈이야.

     

    우리는 인간이야말로 보잘것없고 방향을 상실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 반드시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는 않았어.

     

    우리가 그 말없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인가?

     

    우리는 암흑의 핵심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아프리카에서 말로는 열병을 앓고 있는 커츠라는 유능한 인물을 밀림에서 데리고 나오라는 임무를 받는다. 커츠는 상아거래로 뛰어난 성과를 올린 인물로 그를 절제시킨 도덕적 이념이 과연 무엇인지를 말로는 알고 싶어 한다.

     

    그저 모종의 도덕적 이념으로 무장하고 그곳에 나왔다는 그가 도대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런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 자기의 과업에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지가 궁금했을 뿐이야.

     

    커츠의 실체를 알기 위해 기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밀림 속으로 들어간 말로는 마치 백인들처럼 자유로운 아프리카인들을 본다. 그리고 그들과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는데, 그것의 실체는 미신이니, 믿음이니,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려갈 만큼 가벼운 것들로 만드는 탐욕이다.

     

    우리는 정복당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데만 익숙해 있었거든. 그러다가 거기서 괴물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던 거야.

     

    그 광경을 바라보던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 것은 그들 또한 우리들처럼 인간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소동이 우리와는 먼 친족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

     

    그 제약이라는 게 미신이었을까, 불쾌감이었을까, 참을성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모종의 원시적 자존심이었을까? 아무리 두려워도 배고픔을 이길 수는 없고, 아무리 참을성이 있어도 배고픔을 닳아 없어지게 할 수는 없으며, 배고픔이 있는 곳에서는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먹지 못할 것은 없는 법이네. 그리고 미신이니, 믿음이니,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려갈 만큼 가벼운 것들이 아닌가.

     

    말로는 그들에게서 밀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열병, 그리고 열병에 지배당한 커츠와도 같은 냉정을 잃은 격렬한 슬픔을 느낀다. 그들은 복종하고 있었고, 그것에 지배된 것이다.

     

    그저 빈번히 <약간의 열>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날 듯한 약간의 예감을 느끼며 살았던 거야. 그건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닥쳐올 심각한 상황을 일으키기에 앞서 예비적으로 집적대보는 밀림의 장난기 어린 손길의 감촉이었어.

     

    그 비명 속에는 즉각적으로 적대 행위를 벌일 의도를 예상케 하는 그런 흉포함이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일세. 그 난데없이 들려온 소리가 야성적이고 격렬하기는 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슬픔의 표현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인상을 주고 있었어......극단적인 슬픔도 궁극적으로는 격렬하게 발산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냉담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아.

     

    아프리카인들을 지나쳐 커츠가 있는 주재소에 도착한 말로는 커츠의 실체를 알기 시작한다. 열병에 걸린 그는 서구제국주의의 종교적 지배 이념 이면에 있는 냉정함을 잃은 지배욕, ‘원주민을 말살하라는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념의 뿌리에는 상아라는 탐욕이 있었다. 상아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었고, 생명력이 없는 화석 같은 상아에 광적으로 집착하였다.

     

    우리 백인들은 그간 이루어놓은 발전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네들 야만인들에게는 마땅히 초자연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하느님 같은 힘을 과시하면서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등등의 내용이 바로 그거야.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의지를 행사하기만 해도 실제로 무한한 이익을 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등의 구절도 있었지. 바로 여기서부터 그의 어조는 고양되었고 나를 사로잡기 시작하더군. 지금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보고서의 맺음말은 화려했어. 위엄 있는 선의를 가지고서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속에 담겨 있었어. 그 구절을 읽으니까 나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더군. 그건 무한한 달변의 말이었고, 말의 힘, 부타고 있는 고귀한 말의 힘이었어. 마력에 사로잡힌 듯이 유려하게 흐르는 그 어구들을 방해하는 그 어떤 실제적 방안의 암시도 없었어......온갖 종류의 이타적 감정을 향해 감동적으로 호소하던 글이 끝나는 대목에서 그 노트는 마치 맑은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개처럼 나를 향해 그 휘황하고 무서운 빛을 발하면서 <모든 야만인들을 말살하라!>고 부르짖고 있었어.

     

    그분은 나에게 그 상아를 내놓고 그 고장을 당장 떠나지 않으면 나를 쏘아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거예요. 그분은 능히 그런 짓을 할 분이었고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했죠. 그분은 죽이고 싶은 사람을 누구나 죽일 수 있었고 그걸 말릴 도리는 없었지요.

     

    상아 때문이었다구?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상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어. 그 낡은 진흙 오두막은 상아로 꽉 차 있었다구. 그 일대에서는 땅 속이건 땅 위에서건 코끼리의 어금니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상아는 화석이지요.> 지배인은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했어. 그러나 도저히 그 상아를 화석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구. 그런데도 사람들은 땅 속에서 파낸 상아를 화석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거야.

     

    탐욕과 지배에 사로잡힌 커츠는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다. 그의 지배욕이 커지면 커질수록 밀림은 그의 지배욕으로 그를 집어삼켰고, 커츠는 밀림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의 풍습인 식인을 하였다. 스스로의 지배욕에 복종되면서 주체를 상실한 것이다.

     

    밀림은 그를 받아들였고, 그를 사랑했으며, 그를 껴안았고, 그의 핏줄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육신을 불태웠으며, 어떤 악마의 풍습에 입문시키기 위한 상상하기 어려운 제례를 통해 그의 영혼을 밀림 자체의 영혼에 병탄해버렸던 것이네.

     

    그러나 밀림은 일찌감치 그의 정체를 알아냈고 그 어이없는 침략에 대해 그에게 끔찍한 보복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그 밀림이 그가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속삭여주었으리라고 생각하네.

     

    그는 여러 달 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그간 아마도 원주민들의 숭앙을 받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돼.

     

    그 말뚝 위에 놓인 얼굴들이 집 쪽을 향하고 있지 않았던들 더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을 거야.

     

    커츠가 주체를 상실하면 상실할수록 지배욕은 더욱 그를 사로잡았다. 열병에 걸린 커츠는 끊임없이 나의 상아에 집착하였고 급기야는 모든 것을 나의 소유물로 보았다. 커츠는 마치 온 세상을 집어삼켜버릴 듯한 광적인 지배욕에 휩싸인 채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다.

     

    그가 <나의 상아>라고 하는 소리를 자네들이 직접 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렴, 나는 들을 수 있었지. 그는 <나의 약혼녀, 나의 상아, 나의 주재소, 나의 강, 나의......> 어쩌구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했어.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밀림이 그만 하늘에 박힌 별들을 뒤흔들 정도로 굉장한 웃음을 터뜨리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 나는 숨을 죽이곤 했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것은 보잘것없는 주장이었지.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에 복속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어둠의 힘이 그를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었어.

     

    이 많은 상아는 사실 내 것이지요. 회사는 그 값을 치르지 않았어요. 내가 신변의 큰 위험을 무릅쓰며 손수 이 상아를 모았다구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마치 자기네 소유물인 것처럼 이 상아를 차지하려 하겠지요.

     

    <나의 약혼녀, 나의 주재소, 내 필생의 과업, 나의 이념> - 이런 것들은 그가 이따금 고양된 감정을 토로할 때마다 등장하곤 한 주제였어. 본래의 커츠를 대표하는 망령이 곧 태고의 땅에 묻힐 운명에 처해 있던 속이 텅 빈 가짜 커츠의 침상 곁에 자주 나타나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원래의 커츠가 침투해 들어갔던 그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악마적 사랑과 비현세적인 미움은 이제 원시적 감정을 만끽하며 거짓된 명성, 헛된 탁월성, 겉으로 보기에 성공과 권세로 여겨지던 그 모든 것을 탐하고 있던 그의 영혼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고 있었어.

     

    공동묘지의 잘 관리된 통로처럼 고요하고 단정한 거리의 높다란 건물들 사이에 있던 그 높다랗고 육중한 문간 앞에 서자 나는 들것에 누워 있던 커츠가 온 지구와 모든 인간을 삼키려는 듯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는 환상을 보게 되었어......다시 말해 만물을 정복하는 어떤 암흑의 심장이 그의 환영과 더불어 그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했어.

     

    지배욕이 커지면 커질수록, 커츠는 지배에 복종되었고, 그의 주체성을 말살하였다. 그의 주체성은 탐욕의 지배욕이 만든 공허한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마저도 지배욕에 의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그는 주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말로는 완전히 타락한 커츠를 기선에 싣고 떠난다. 지배에 복종되어 주체성을 상실한 열병에 사로잡힌 커츠는 끝내 기선에서 탐욕에 사로잡힌 지배욕에 공포를 느끼며 무서워라!’라는 마지막 목소리를 남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많은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라는 사실이며, 또 그 재주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며 실재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담론 능력이요 그의 이야기라는 사실이었어. 다시 말하면 그 타고난 표현력이라든가, 그 당혹감을 주는 것, 그 깨우침을 주는 것, 그 가장 고양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경멸할 만한 것, 고동치는 빛의 흐름, 혹은 어떤 뚫을 수 없는 암흑의 핵심에서 흘러나오는 속임수로 가득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었네.”

     

    그 목소리는 사라져버렸던 거야. 목소리를 제외하고 그에게 남은 게 있었던가?”

     

    나는 그가 <무서워라! 무서워라!>라고 속삭이듯이 외치는 것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

     

    그런데 말로가 커츠를 기선에 태울 때 아프리카인들이 마치 커츠를 붙잡으려는 듯 다가 왔다. 한 여인은 손을 뻗으며 고함을 질렀고, 아프리카인들은 이를 따라하였다. 이들은 커츠의 지배에 완전히 복종한 상태였고, 복종에 지배된 것이었다. 지배에 복종된 커츠는 복종에 지배된 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타락한 자신처럼 그들 또한 타락한 것이다.

     

    강가에서는 인간의 몸뚱어리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머리에 투구 같은 것을 쓰고 황갈색 뺨을 가진 여인이 물가까지 달려 나오더군. 그녀가 두 손을 쳐들고 무어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그 야성의 군중이 그 소리를 받아 뚜렷한 목소리로 빨리 숨가쁘게 합창하는 것이었어. <당신은 저 소리의 뜻을 아십니까?> 내가 물었지......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 핏기 없는 입술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의미를 띤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에 그 입술은 발작적으로 떨리기 시작했어. <내가 그 뜻을 모를 리 있겠어요?>

     

    말로가 아프리카 밀림에서 마주친 암흑의 핵심은 서구제국주의에 타락한 커츠와 아프리카인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암흑이 단지 아프리카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으로 돌아온 말로는 커츠의 약혼녀가 커츠의 도덕적 이념을 옹호하는 말을 들으며 그녀 또한 아프리카인들처럼 커츠에게 복종하였고 그들 자신이 복종에 지배되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분이 보인 모법도 남아야 해요.>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속삭이더군. <사람들은 그분을 우러러보았고, 그분의 훌륭하심은 모든 행동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분이 보인 모범만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는 언제나 그 달변의 망령을 보고 있을 거야. 뿐만 아니라 그녀의 그 비극적이고 눈에 익은 허깨비 같은 모습 또한 영원히 보고 있을 거야. 이런 몸짓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본 다른 한 여인과 닮은 데가 있었어. 그 여인 또한 비극적인 인물로서 아무 효력도 없는 부적으로 몸을 장식한 채 그 지옥 같은 강물, 암흑의 세계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의 반짝이는 수면 위로 헐벗은 갈색의 팔을 펴고 있었지.

     

    암흑의 핵심은 아프리카를 지배와 복종이라는 암흑으로 사로잡은 서구제국주의의 탐욕이다. 그러나 이것이 서구제국주의와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Heart of Darkness> 암흑의 핵심이면서 암흑의 심장이기도 하다. 암흑은 우리의 내부인 심장에서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 주체성을 말살하여 사람을 언제든지 타락시킬 수 있는, 탐욕이 불러일으키는 지배와 복종의 괴상한 공격성이 바로 암흑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만물을 정복하는 어떤 암흑의 심장이 그의 환영과 더불어 그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했어.

     

    내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앞바다는 강둑 같은 시커먼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끝나는 곳까지 나 있는 그 고요한 물길은 찌뿌린 하늘 아래서 음침하게 흐르면서 어떤 엄청난 암흑의 핵심 속으로 통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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