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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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 허무주의와 주체성, 외로움과 사랑책/소설 2020. 11. 8. 06:36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나오코: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줄래? 와타나베: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어.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도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0. 뒤틀림 일본 정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허무주의’다. 허무주의는 문학, 음악, 영화 등 거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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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장 폴 사르트르 - 존재의 권리책/소설 2020. 11. 7. 06:27
철학에는 진리를 탐구하는 지식의 관점과 도덕을 제시하는 지혜의 관점이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지식보다는 지혜의 관점이 강하다.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실존주의는 철학계의 주류로 떠올랐는데, 이를 무너뜨린 것은 구조주의다. 실존주의가 지혜의 관점으로 접근하였다면 구조주의는 지식의 관점으로 접근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구조주의의 시대다. 구조주의는 후기 구조주의로 나아가면서 현대사회,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을 열었다. 따라서 사르트르가 『구토』를 통해 제시한 실존주의는 현대사회의 주요 흐름과는 다소 안 맞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식의 관점에서다. 지혜의 관점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흥미로운 점은 사르트르의 『구토』에서는 구조주의적 관점이 소설 초반부에 나온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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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 청춘의 투명한 고통책/소설 2020. 11. 6. 06:26
가장자리에 피가 묻어 있는 유리 조각은 새벽 공기에 물들어 투명에 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혹자는 청춘의 고통을 통과의례적인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당연한 고통은 없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고통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청춘의 고통은 투명에 가깝다. 무라카미 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 이유 없는 고통, 청춘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이유 없이 섹스, 마약에 중독되어 방황한다. 고통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다. 완전한 고통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에 원인은 없을지라도 그 배경은 있다. 소설의 배경은 1960년 일본의 요코다 미군기지로, 이는 종전 후 미국에 점령당한 일본 사회를 상징한다. 일본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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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기다림》 나딤 아슬람 - 당신에게 평화를책/소설 2020. 11. 5. 06:23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우연히 학교 옆을 지나가다가 교사와 어린이들과 함께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며 ‘운명’이란 말을 들먹였다. 운명. 파괴자나 파괴물의 정체를 모를 때 흔히 쓰는 말. 탈레반의 땅이라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은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쓰레기통이다. 영국의 제국주의, 소련의 공산주의,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들 사이에서 자라난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 근대가 집대성된 이데올로기들이 인간의 탐욕을 타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모여들었고, 급변하는 이념들 사이에서 아프가니스탄은 파괴의 땅으로 변해갔다. 파키스탄의 신예작가 나딤 아슬람은 『헛된 기다림』에서 제국주의, 공산주의, 팍스아메리카나, 이슬람 근본주의, 네 가지 이념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념의 쓰레기통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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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 너와 나, 아무튼 우리책/소설 2020. 11. 4. 05:57
너와 나는, 너와 나다. 우리가 아니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에서 폴과 미리암에게 아이가 생긴다. 미리암은 아이를 돌본다. 그러나 그것이 싫다. 그녀는 가족,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 ‘나’로 살고 싶다. 이들은 보모를 구한다. 이민자 보모는 안 된다. 이들은 이것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도. 그래도 이민자 보모는 골칫덩이다. 미리암에게는 더 그렇다. 그녀도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미리암은 이민자가 너와 나는 같은 ‘우리’라는 내색을 할까 두렵다. 미리암은 우리가 아니라 ‘나’이다. 이들은 ‘백인’ 보모를 구한다. 보모 루이즈는 폴과 미리암의 집과 아이를 ‘우리’처럼 돌본다. 폴은 이런 루이즈가 못마땅하다. 보모 주제에. 그는 이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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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이스마일 카다레 - 거짓된 죽음의 의식책/소설 2020. 11. 3. 06:21
사방이 비와 죽음이다. 그러니 다른 걸 찾게나. 유해 발굴이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유해 발굴을 통해 전사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으로, 전쟁터는 영웅들이 활동한 위대한 전장으로, 전쟁은 전장의 영웅들이 그들의 업적을 쌓은 활동무대로 거듭난다. 그렇게 국가는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서사시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는 영웅도, 전장도, 업적도 없다. ‘사방이 죽음’뿐이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죽은 군대의 장군』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알바니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는다. 종전 후 이탈리아는 유해 발굴단을 알바니아에 보내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가져오려 한다. 유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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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 그 서늘함이 눈물겨운 노래책/소설 2020. 11. 2. 04:44
붓의 나라 조선의 왕들은 독살을 우려하여 은으로 된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조선은 고려, 삼국시대에 비해 외침이 적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왕은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다. 유교에서 이상적 국가는 왕이 유교 이념을 실현하는 국가다. 그리고 왕이 유교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 신하들이 왕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 그러나 현실은 신하의 뜻을 왕이 얼마나 잘 따르느냐이고, 결국에는 왕권과 신권의 권력다툼이다. 조선의 건국세력인 사대부들은 고려의 귀족들과는 다르게 부만을 축적한 계층이 아니었다. 학문으로 무장했고, 유교 이념에 충실한 조선에서 사대부들은 학문으로 왕보다 우위에 서서 왕을 견제할 수 있는 명분을 갖출 수 있었다. 이성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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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알베르 카뮈 - 이방인, 삶의 시작책/소설 2020. 11. 1. 04:36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왔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 삼가 조의.”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국주의가 한창 활개 치던 시절,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데려다 노예로 부리기도 했지만 ‘인간동물원’이라는 괴상한 곳을 만들어 그곳에 원주민을 전시합니다. 현대적 인권의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는 목적, 이유, 자격, 신분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사람이기 위한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이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동물원에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둘러싼 갈등은 제2차 대전에서 폭발합니다. 나치에게 유태인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에게 중국, 조선인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죽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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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 상처에 대하여책/소설 2020. 10. 30. 05:55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쓰쿠루 또한 그렇다. 쓰쿠루는 누구보다 가까웠던 친구 4명에게 일방적으로 절교 통보를 받는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이를 어떻게든 치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처를 치료하려면 시간을 되돌려야 하므로 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처를 외면하고 이를 삶의 바깥으로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상처는 끊임없이 삶의 내부로 파고든다. 사람들은 이에 절망하고, 상처는 객관성을 잃으며 과대포장된다. 상처를 외면한 쓰쿠루는 삶에 깊이 각인된 상처에 절망하고 무려 16년간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상처가 삶의 내부로 파고드는 이유는 이 또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상처는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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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삶의 무게를 버티기책/소설 2020. 10. 30. 04:17
자기계발서 열풍이다. 이 바닥의 고전 격인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부터 최근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자기계발서 열풍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경제양극화, 세대갈등, 취업난 혹은 외로움, 우울, 고단함 등등의 무게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삶의 무게는 결국 홀로 버텨내야 한다. 실존주의 철학은 개인의 의지를 최우선으로 한다. 현재 실존주의는 철학의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나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 세상에는 수만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인 사실을 떠나 삶을 보았을 때 실존주의 철학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버텨낼 수 있다면 혹은 그래야만 한다면, 굳이 남이 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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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가벼움책/소설 2020. 10. 29. 04:15
1968년 프랑스에서 무거운 근대적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체코의 프라하에는 소련군의 무거운 탱크가 밀고 들어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반복된다면 이는 굉장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프랑스에 ‘68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체코에는 ‘프라하의 봄’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이 한 번뿐일지, 영원히 반복될지를 누가 알 수 있을까? 인생이 한 번뿐이냐, 영원히 반복되느냐는 형식에 불과하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는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Einmal ist keinmal)’며 의무로 점철된 무거운 삶 너머에 있는 개별적 자아를 찾고 싶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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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 - 우리의 삶책/소설 2020. 10. 28. 05:48
밑도 끝도 없는 질문 중 하나가 “나는 누구인가?”다. 나는 정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무의미하다. 나는 단지 나로 존재할 뿐이니깐. 성장은 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받아들인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에서 주인공인 라일라는 정체성이 없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납치당해서 이름도 모른 채 타인의 손에 길러진다. 정체성의 부재는 라일라의 삶의 뿌리를 없앴다. 그래서 라일라는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한 채 세상과 사람을 불신하고 부유하는 삶을 산다. 나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가고 싶었다. 갈등과 행복이 교차하는 삶이 그렇듯, 그녀의 삶에는 그녀를 억압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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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코맥 매카시 - 살아 나아가기책/소설 2020. 10. 28. 05:47
그는 올바른 세상이 되는 데 필요한 무언가가 혹은 자신이 세상에 올바로 서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찾기 위해 언제까지고 방랑할 것이며, 우연히 마주친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이 찾던 것임을 깨달을 것이고, 그 깨달음은 옳을 것이었다. 삶에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바꾸어버리는 혁명적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명적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혼돈의 소용돌이를 버티는 것에 삶이 있다. 사람은 이러한 삶이 사는 것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살아 나아가는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럼 네 나라는 어딘데?” “나도 몰라. 나도 어디인지 몰라. 그 나라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도 모르고.” 코맥 매카시의 『모두 다 예쁜 말들』에서 소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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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 지극히 터키적이고 놀랍도록 세계적인책/소설 2020. 10. 28. 05:44
터키, 1985 1. 현대성 근대와 현대의 구분점은 학문적으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세계는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양차 대전을 거치며 급격히 발전한 과학기술로 가전제품이 대량생산되면서 생활양식이 크게 바뀌었다. 대중문화와 3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근대성이 현대성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성 혹은 모더니티란 산업혁명 이후 도래한 소품종 대량생산에 따른 가치관이다. 근대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다. 일명 테일러리즘으로 불리는 과학적 관리법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것을 수량화, 객관화한 것이다. 포드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 ‘포드’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생산방식이 초래한 ‘관리’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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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 이해라는 말책/소설 2020. 10. 28. 05:32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 공짜가 없는 이 세상에, 가끔은 교환이 아니라 손해를 바라고, 그러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또 왜 존재하는 걸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나 부모와 아이 사이는 더 그렇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능한데,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그런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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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순수했던 시절책/소설 2020. 10. 28. 05:29
사람은 세상을 감성과 이성으로 받아들인다. 근대의 교육제도는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세상과 격리시키고 이성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감성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감성의 성장은 멈추고 이성만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그렇게 학교는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이성을 가진 10대를 탄생시켰다. 감성과 이성의 불일치로 인해 어른도 아이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 10대는 세상에 대한 기대와 불안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인 콜필드는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이성을 가진 10대이다. 콜필드는 세상에 대한 감성을 책으로 충족시키며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교육은 이러한 그의 세상에 대한 감성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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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 휴머니즘 비판책/소설 2020. 10. 28. 05:24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사람들은 정말 그래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히틀러를 사랑할 수 있을까? 히틀러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히틀러는 ‘절대 악’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휴머니즘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다큐멘터리는 히틀러의 가족을 분석하여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음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히틀러는 정말 사람이 아닐까? 그는 정말로 ‘절대 악’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휴머니즘의 가치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도리스 레싱은 『다섯째 아이』에서 휴머니즘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화목한 한 가정을 파괴하는 ‘다섯째 아이’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그는 정상적이다. 그는 단지 아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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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모옌 - 이념과 삶 사이에 놓인 생명책/소설 2020. 10. 28. 05:19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마오쩌둥과 장쩌민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극단의 사상을 오고갔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공산주의 고수를, 장쩌민은 흑묘백묘로 대표되는 적극적 자본주의 도입을 추구했다. 중국은 이 두 명의 인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불과 반세기 만에 겪어낸다. 그렇게 양 극단 사이에서 중국 인민의 삶은, 그리고 그 생명력은 국가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모옌은 『개구리』에서 생명의 근원인 아기의 탄생마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름 앞에 계획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주인공의 고모는 문화대혁명 이전, 근대적 산부인과 기술을 받은 엘리트로, 수천 명의 아이들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의 애인이 대만으로 도피하면서, 고모는 정부에 의심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정책인 계획생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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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 삭막한 순수함책/소설 2020. 10. 28. 05:18
김훈의 소설은 삭막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말만 한다는 느낌이다. 문체에서 굳이 멋을 부리려 하지 않는다. 김훈은 한 TV프로그램에서 ‘주어와 서술어로만 된 글을 쓰고 싶다’고 하였다. 따라서 김훈의 삭막함은 순수함에 가깝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단지, 그 보여주려는 대상이 삭막하기 때문에 소설이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김훈이 보여주려는 것은 삭막한 세상이고, 그 세상에서 소외된 자신이다. 그리고 김훈은 이러한 자신을 혐오한다. ‘공무도하’의 작가의 말에서 김훈은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중략)...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중략)...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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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 근본, 국가 혹은 삶의 문제책/소설 2020. 10. 28. 05:17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정치적 메타포로 가득한 소설이다. 소설 내 두 핵심 남녀 인물인 찬게즈와 에리카는 각각 동양의 ‘칭기즈칸’, 서양의 ‘아메리카’를 나타낸다. 작가는 찬게즈와 에리카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의 관계를, 그 대립을 말하고 있다. 찬게즈는 고향인 파키스탄을 그리워하며 미국 생활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마치 그의 조국인 파키스탄이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하기 전 야만인처럼 생활할 때, 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화려한 문명을 이룩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고향인 파키스탄을, 그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런 찬게즈를 보며 그의 직장 상사인 짐은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한다. 짐에게서 근본적인 것은 현실의 미국이다. 그러나 찬게즈에게 근본적인 것은 자신의 과거인 파키스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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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 - 평범한 삶의 특별함책/소설 2020. 10. 28. 05:16
평범한 삶이란 타인에게 자신의 특별함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타인은 너무 많고, 그렇게 타인에게 맞추다보면 자연스레 평균을 따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특별함을 찾을 수 없을 때,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낯설 때, 삶은 한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딘가로 떠나서 잃어버린 자신의 특별함을 찾고 싶지만, 쉽지 않다.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 증권인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자신의 특별함을 찾아 떠난다. 그 특별함은 예술이었고, 그는 평범한 삶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렇게 거부한 평범한 삶에는 더크와 더크의 아내인 블란치가 있었다. 더크는 평범한 삶에서 특별함을 찾으려하였고, 평범한 삶에서 버림받은 블란치와, 평범한 삶을 거부한 스트릭랜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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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 기억과 환상의 경계에 선 권력책/소설 2020. 10. 28. 05:14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10여 년 전 헐리웃에서 유행했던 반전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메멘토, 식스센스, 디아더스, 아이덴티티 등. 그래서 비록 반전의 강렬함은 있더라도 새로운 느낌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헐리웃 반전 스릴러 영화를 닮은 것처럼 한국 영화를, 특히 봉준호의 영화를 닮았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각 국가별 특색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헐리웃 영화는 유독 자유나 가족을 강조하고, 과거 전성기의 홍콩 영화는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를 많이 담아내는 편이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영화가 봉준호의 영화로, ‘살인의 추억’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메시지를 은근슬쩍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김영하의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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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슬프도록 아름답게 허무한 삶책/소설 2020. 10. 28. 05:13
흰색과 겨울로 유명한 『설국』에는 4가지 색과 3가지 계절이 등장한다. 허무의 검은색, 허무를 받아들인 순수의 흰색, 허무를 거부한 공허의 붉은색, 그리고 공허와 순수 사이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녹색. 그리고 이러한 색들은 눈으로 가득한 흰색의 겨울, 아침 햇살이 비치는 붉은색의 가을, 신록이 움트는 녹색의 봄으로 나타난다. 삶은 허무하다. 이별하고 실패하고 죽는다. 삶은 이러한 허무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삶의 허무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그러므로 허무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허는 이러한 허무를, 비어짐을 거부함으로써 비어짐으로 텅 빈 것이다. 순수는 이러한 비어짐을, 허무를 받아들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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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 불완전한 삶의 가치책/소설 2020. 10. 28. 05:10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완전한 삶은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한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완전한 삶이 있는 천국을 꿈꾼다. 그러나 ‘실제적인’ 삶은 완전한 삶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하지만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완전한 삶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므로 완전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리고 완전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희망이 있다. 불가능성의 불가능성,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지독한 모순은 불가능성의 불가능성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긍정은 다시 한 번 완전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은 이처럼 무한히 뻗어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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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V.S. 나이폴 - 완전한 절망책/소설 2020. 10. 28. 05:08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국가로, 서구 식민지 개척시기에 원주민이 몰살당하여 전통적인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유럽인, 아프리카 흑인들을 주축으로 완전히 새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수탈에 집중한 영국의 영향으로 제대로 된 근대국가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이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세기 중반 흑인, 인도인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독립하였지만, 제대로 된 공동체 사회를 만들지 못하여 사회 전반에 도덕적 공백이 만연하게 되었다. 나이폴의 1959년 작 『미겔 스트리트』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도덕적 공백을, 미겔 스트리트라는 사회에 사는 16명의 인간군상과 이를 관찰하는 한 명의 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17개의 연작소설로 그려낸다. 미겔 스트리트는 도덕적 공백으로 인해 사기, 중혼, 절도,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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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만들어진 악책/소설 2020. 10. 28. 05:05
해묵은 논쟁 중에 성선설, 성악설이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라는 논쟁에 대해 특별한 답은 없다. 왜냐하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선설, 성악설을 물으려면 먼저 인간과 독립된 본질적인 선과 악, 성선과 성악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선과 악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성선설과 성악설은 애초에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프랑켄슈타인하면 일반적으로 각진 머리와 이마에 나사못을 가진 괴물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1818년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의 원작,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닌 그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피조물인 ‘괴물’ 프랑켄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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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걸음》 모옌 - 국가의 위선적 도덕에 희생 당하는 중국책/소설 2020. 10. 28. 05:04
모옌의 [열세 걸음]은 전체의 위선적 도덕을 위해 개인의 주체성을 희생해야 하는 중국의 현실을 카프카의 ‘변신’이 연상되는 다소 엽기적인 소재와 특이한 서술방식으로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소설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정체불명의 서술자가 분필을 씹어 삼키며 청자인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리교사인 팡푸구이는 수업 중 과로로 쓰러진다. 그러나 중국의 열악한 교사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대의를 위해 죽은 사람이 되고, 그의 아내인 투샤오잉에게 귀신 취급을 받는다. 장례미용사인 리위찬은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장례식장에서 시체를 당국의 입맛에 맞게 성형하는 일을 한다. 뚱뚱한 당 간부가 죽으면 인민에게 '열심히 일하는 당 간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그의 시체에서 지방을 제거하는 따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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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자기애책/소설 2020. 10. 28. 04:58
20세기를 전후로, 도시의 발달은 사람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농경사회의 전통적인 시간, 공간 개념은 도시 속에서 재정립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도시의 불안과 우울은 농경사회의 것과는 그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나뉜다. 낮은 단계의 욕구는 가장 하위가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시키려는 생존의 욕구이고, 그 다음은 생존을 보장하는 안전의 욕구이다. 보다 높은 단계의 욕구로 3단계가 사람에 대한 애정, 소속의 욕구이고 4단계는 3단계에서 보다 발전된, 집단이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은 성취의 욕구, 마지막 5단계는 자아를 완성하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농경사회의 욕구는 생존과 안전의 욕구였다. 오래된 비디오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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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 지배와 복종의 쾌감, 그리고 타락책/소설 2020. 10. 28. 04:53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성적으로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과 복종하는 것에 대한 쾌감을 나타낸다.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사디즘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비단 성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배와 복종은 이를 통제하는 감정이 선을 넘었을 경우, 그 목적이 사라지며 주체를 집어삼켜버린다. 지배하는 사람은 왜 지배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배에 복종하게 되고, 복종하는 사람은 왜 복종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복종에 지배되는 것이다. 지배와 복종은 인간의 공격성이 가지는 괴상한 쾌감이다.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을 뒷받침하는 이념은 선교였다. 선교는 ‘종교로 야만인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리는 약탈이었다. 약탈은 ‘야만인을 지배하여 탐욕을 채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